GATT의 환경관련 무역규제, GATT체제의 한계

GATT의 환경관련 무역규제

제2차 세계대전에 따른 파괴로부터 세계경제를 복구하기 위하여 보호무역주의가 주류였던 지닌 1947년 23개국이 창설회원으로 참여하여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체제를 출범시키고,1948년 1월 1일부터 발효됨으로서 다자간무역협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GATT체제는 세계 각 국의 무역자유화 촉진과 무역체제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목적으로 출범되었다.각국 정부가 무역에 관한 다자협력을 추진하고 확대할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였고,초창기에는 대상이 주로 상품위주로 논의 되었다.

이후 GATT는 1950-1970년대의 자유무역시대를 이끌어 오면서 자유무역을 저해하는 무역장벽의 제거에 앞장서며 세계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하지만 여러 차례의 다자간무역협상을 통한 대응조치에도 GATT는 한계를 맞게 되어 8번째 다자간협상인 우루과이라운드를 거쳐 WTO를 넘어가게 되었다.GATT는 내․외부 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나타내며 WTO체제로 전환되었다.

GATT체제의 한계

GATT의 내부적 한계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GATT는 본래기구가 아닌 하나의 조약으로서의 한계이다. 비록 협정의 효율적인 운영을 지향하며 사무국을 설치하여 국제기구와 비슷한 모습과 지위를 갖게 되었지만,조직상의 결함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둘째,GATT는 분쟁해결분야에서조차 강력한 제제조치가 없어 분쟁해결을 제대로 진행 할 수 없었기 때문에,GATT는 자신에게 주어진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힙이 없었던 것이 결정적인 결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GATT의 외부적인 한계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선진국들의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경상수지 적자의 확대로 인한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대두하고 있었다.

둘째,수출자율규제와 시장질서협정과 같은 GATT체제를 벗어난 회색지대조치(Gray area measure)4)와 반덤핑조치 및 상계관세조치의 남용으로 GATT에 대한 불신이 점차 높아지는 계지가 되었다.

셋째,경제블록화가 진행되면서 보호무역적인 지역주의에 대한 우려가 팽배했다.

넷째,농산물과 서비스무역 및 지적재산권 문제를 다자간무역체제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거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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